본문 바로가기

조현병 관련 상황/시간별 분류 (A)

악덕기업에서 조현병 환자가 살아남는 방법


주치의에게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치의에게 <회사 때문에 너무 바빠서 외래를 못 온다> 라는 핑계를 대며 약을 우리 엄마나 동생이 대신 받도록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회사때문에 바쁜 게 아니라 회사가 병원을 못 가게 막는 것이었다.

내가 1달에 1번 병원에 가야 한다니까, 사장은 <젊은 애가 무슨 지병이 있다고 1달에 1번 씩이나 병원을 가?> 라면서 병원을 못 가게 막아서 2~3개월에 1번만 병원에 갈 수 있었다. 그나마도 오전 2시간 정도만 자리를 비울 시간을 줘서, 오전 진료를 일찍 받고 바로 회사에 출근하러 가야 했다. (불행하게도 출퇴근 거리도 왕복 4시간이 넘었다.) 회사에서 충분히 진료받을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주치의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렇게 으름장을 놓는 사장 앞에서 나는 조현병이라서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해당 회사에 입사하기 2년 전 즈음부터 인베가 서스티나 주사제를 처방받는 걸 그만두고 인베가 서스티나 6mg을 처방받게 되었는데, 그 당시는 부모님이 주사가 내 자식의 몸에 안좋은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의한 부모님의 요청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한 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빌어먹을 악덕회사 때문에 주기적으로 주사를 맞으러 갈 시간을 내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위기는 입사 6개월차 때 있었다. 회사에서 내 능력에 맞지 않는 과도한 일을 따와서 백엔드 프로그래밍과 프론트엔드 프로그래밍을 모두 하라고, 사실상 풀스택 개발자로써의 업무를 수행하라고 지시하였다. 당시 백엔드 역량이 거의 없는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저녁근무는 물론 주말근무, 밤샘근무까지 각오해야 할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사실 내가 이런 일을 거절하려는 속내는 조현병 때문이었다. 아무리 약을 꾸준하게 먹는다고 해도 과도한 업무량에 치이면 조현병이 재발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걸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가 없으니, 사장과 프로그래머 고문은 나를 닥달하며 이 일을 하라고, 이 일을 잘 수행하고 나면 내 실력이 급상승 할거라며 이 일을 하라고 쫄랐다.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필요했다. 난 한 달에 135만원 받으면서 풀스택 개발자로 일하는 건 수지타산이 안맞는 것 같다며, 풀스택 개발자를 원하시면 월급을 2배 이상 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장은 이 말을 듣고 월급을 2배 이상 주는 것을 포기하였으며, 백엔드 부분을 외주를 줘서 프로젝트를 해결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화나는 부분은 이런 악덕기업이 법적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려고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4대보험마저 안되는 회사가 사회적기업 인증을 통과할 리가 없었는데, 한 번은 직원들을 모두 불러놓고 우리 회사에 혹시 장애인 있냐고, 장애인 있으면 자원해서 우리 회사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는 데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나는 조현병이 있지만 장애등급도 없었고, 조현병이 있다는 사실을 회사에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회사같은 악덕기업이 사회적기업을 하면 사회적기업 이미지에 먹칠만 한다고 생각했고, 한때 사회적기업 블로그를 운영했던 사람으로써 분노했지만 걷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입사 1년차 때 빙판길에 미끄러져 발목 인대가 끊어져서 수술을 받았으며, 2주일간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어 월급날이 매달 10일에서 24일로 늦춰졌다. 사실 각 개개인 직원마다 월급날이 다른 회사였는데 무슨 꿍꿍이였는지 모르겠다. 공식적인 월급날은 24일이었지만, 사장은 월급날이 언제라는 언급을 하는 걸 꺼려했으며 월급을 항상 월급날보다 늦게 지급하곤 했다.



1년 5개월~6개월차 때, 이전과는 비교불가인 진짜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다.